이글루스의 앨런비님 블로그에서 친일파 청산문제(제목 그대로)에 대해 읽어 보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청산이 꽤나 철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물론 여기서 12,000명에 달하는 즉결처형 희생자는 제외한다. 이건 재판도 없이 나치에 협조했으니 매국노라고 마구잡이로 죽인 것이고 문명국가에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막장 행각이다.). 사형선고 받은 사람만 7000명 이상에 그 중 760여 명이 사형당했고 페탱과 같이 어느 정도 반나치 운동에 협조적이었던 사람조차 비시 정부 수반이라는 이유로 종신형을 받은(그나마 반나치 운동에 협조적인데다 이전의 업적이 참작되어 사형을 면한 것이지 아니었으면 피에르 라발처럼 바로 사형) 것이나 나치 밑에서 특정 기간 이상 발행된 언론을 나치 부역으로 간주해 폐간시킨 것을 보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청산을 보고 사람들은 프랑스를 부러워한다. 저들은 나치 부역자를 저렇게나 철저하게 처단했는데 우리는 어째서 한명도 처단하지 못하고 이꼴이 되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나온 이야기다. 프랑스처럼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심지어 진보 성향의 <대한민국사> 조차도 친일청산을 프랑스식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평가할 정도이니.
우선 당시의 친일파 실태를 보면 1910년 경술국치 당시에 비해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 있었다. 이는 일제가 식민통치를 하면서 조선인들의 협조를 받고자 상당수의 조선인을 식민 통치 기구에 채용한 결과인데, 특히 1920년대부터 문화통치라는 걸 시작하면서 조선인들을 식민 통치기구에 대거 끌어들였고 일반 조선인들의 반감을 줄이고자 서민층에서 인재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서민 출신의 생계형 친일파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났고 이는 이전 친일파 형성 공식(주로 기득권층이나 기득권층에 가까운 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귀족작위를 받는)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또한 식민지배가 장기화되고 독립의 희망이 조금씩 사라져가면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제에 협조하기 시작했고(실제로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가들의 변절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광수나 최남선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친일파의 수는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 1945년 광복 당시에는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일본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을 정도에 이르렀다. 즉 악질 친일파 수는 그때나 광복 당시나 얼마 안 되지만, 정말 프랑스식으로 청산하자니 배제해야 하는 친일파 수는 엄청났던 것. 친일파들이 면피용으로 쓴 '모든 조선인이 친일파' 라는 식의 주장은 유감스럽게도 빈말이 아니다.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악질 친일파들까지 여기에 묻어가려고 한 게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 보니 친일파를 전부 청산한다는 건 다음과 같은 사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생독립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행정, 입법, 사법을 확립해야 하는데 전부 일본 식민통치 기간 교육받아 채용된 사람들이니 이들을 배제하면 정말 아무것도 못 한다. 독립운동가 출신이 없진 않았지만 극소수였고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 스스로 '악질 친일파가 아니면 신생독립국가의 건설에 활용해야 한다' 며 친일파들을 감싸주고, 때로는 은둔한 사람들까지 데려오기도 했다. 당장 이종찬(그 유명한 참군인 이종찬 장군 맞다)만 해도 자신은 일본군 장교 출신이라며 은둔했던 것을 독립군들이 설득해서 군에 복귀시켰으며, 박정희는 광복 직후 광복군에 가담하여 귀환대를 지휘한 장교단의 일원이었으니, 이는 당시 한반도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사례다.
그럼 악질 친일파는 몇이나 되었느냐. 얼마 안 됐다. 우선 이완용, 송병준 같은 진짜 악질은 이 시점에는 대부분 저승길로 직행했기에 처벌 자체가 불가능했고(가족을 처벌하자면 가능했겠지만 이건 북한 같은 전제 왕정에서나 통용되는 논리고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절대로 말이 안 되는 헛소리니 논외로 하자) 이시기 친일파 중에 체포, 기소된 인물은 배정자 정도다. 그렇다면 악질 친일파로 처벌받을 자들은 대부분 정말 독립투사를 체포, 살해, 고문하고 일제 밀정 노릇을 하는 경우였는데 이런 케이스 역시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민족반역자로 취급되어 경멸의 대상이었던 만큼 이름이 일일이 거론될 정도로 극소수였고 친일행각으로 유명한 이광수나 최남선 등의 경우도 일제에 협조한 측면은 있지만 정말 신생독립국가에서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악질적인 매국노냐고 물으면 '아니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반민특위에서 잡아가 재판을 하긴 했지만 반민특위가 제대로 작동됐다고 해도 이들에 대한 처벌은 관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일부 진보진영에서 기대하는 것 같은 '프랑스식 친일파 청산' 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아니, 그 프랑스에서도 나치 부역자들 가운데 피에르 라발처럼 악질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자들. 그 영향력이 컸던 언론인이나 기업인 등이 아닌 예술 쪽 인사들을 비롯해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자들은 처벌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했다가 분위기가 좀 나아지자 다 풀어주는 식으로 적당히 처리했다. 인재가 넘쳐나는 프랑스조차도 이들을 전부 다 처형했다가는 뒷감당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에서 법적 친일청산이란 독립국가 한국에서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완용, 송병준 같은 악질 매국노들과 독립투사들을 살해, 고문한 반민족행위자들만이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볼 때 이들 가운데 실제 경술국치에 기여한 매국노들은 1945년 시점에는 배정자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전부 죽었고 신생독립국가가 민주국가로 결정난 이상(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민주국가를 원칙으로 했다) 그 후손들을 처벌할 수는 없으니 남은 건 후자의 부류들인데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친일행각, 매국행각 자체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의 측면에서 이들을 엄벌에 처할 수 있었을 뿐 나머지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풀어주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실제로 반민특위에서 다룬 사건들도, 중형을 내린 사건들도(비록 제대로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악질적인 경우 아니면 공민권 제한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굉장히 관대한 처벌이 내려졌는데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오늘날의 친일파 청산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특정 독재정권이나 외세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무작정 다 쳐죽인다면 인재가 남아나지를 않는다. 게다가 이는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지 못해 이런 사태를 만들어낸 국민들 전체의 잘못이기도 하다. 따라서 친일파 청산 자체가 좌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설사 청산이 이뤄졌다고 해도 노덕술이나 김창룡 같이 진짜 악질들만을 선별적으로 골라 몇십명 정도를 처단하는 형태였을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봐야 한다.
역사를 평가할 때는 당시의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한 뒤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롤모델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는 나치전범들 몇만명씩 쳐죽이고 대청소를 했는데 우리는 하나도 못 죽여서 이렇게 됐다' 는 헛소리가 나오게 된다.
p.s 당시 대한민국의 치안의 측면에서 경찰의 고위 인사 노덕술의 처벌은 무리였다는 주장도 없진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처벌을 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다고 본다. 노덕술의 악행은 워낙 그 정도가 심하여 당시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아무리 능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처벌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을 할 의무가 있고 현실과 타협하더라도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용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이승만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노덕술은 신생독립국가의 현실상 상당히 친일행위를 악질적으로 한 자들조차도 관대한 처벌을 내리거나 때로는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던 반민특위의 기준으로 봐도 워낙 죄질이 나빠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케이스였다.



덧글
雲手 2011/11/20 12:22 #
본문 내용은 대략 공감이 갑니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이견이 있습니다만 큰 문제는 아니고요.똑같은 문제가 다시 한 번 발생할텐데 이게 통일 후 반민족, 반인륜적인 행태를 보인 북한 집권층의 처리 문제입니다.
1. 김씨일가
2. 북조 고위 공무원 및 군인, 고위 당직자
3. 북조 공무원 및 당원, 군 장교출신 전원
4. 김씨 일가 장기집권에 적극 반항하지 않은 북조인민 전원
중 어디까지 처벌해야 할까요?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처벌을 해야 민족정기/인류공영의 기반을 흐리지 않을까요?
1. 사형
2. 무기징역
3. 장기형
4. 강제노동형
애고 복잡합니다.
메이즈 2011/11/20 12:47 #
북한 쪽도 친일파 청산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차피 북한 지역을 완전히 배제할 생각이 아닌 이상 김정일과 그 최측근들을 뺀 대부분은 기분나빠도 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1. 김씨일가의 경우 김정일 정권에 적극 참여한 경우(김정은, 김경희)와 그렇지 않고 실무나 맡는 등 요직에서 밀려난 경우(김평일, 김정남, 김정철)로 갈릴 겁니다. 전자의 경우는 최소한 몇십년 징역을 피할 수 없겠지만 후자는 처벌하지 않고 넘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2. 북한 고위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중처벌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real님께서는 이들 모두를 중처벌 대상이라고 분류합니다만 제가 볼 때는 그 정도는 무리이며 게다가 북한 지도부 전체를 완전히 갈아버릴 경우 이들이 극한 반발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반인륜 범죄 여부를 고려하여 이에 연관되지 않은 일부는 처벌을 관대하게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3, 4. 이들은 대부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강요당한 것이고 더욱이 이들을 모두 처벌하고 제거했다가는 통일 초기의 치안확보 및 남북한 분리 과정에서의 북한 주민 활용 자체가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고 이후에도 북한 지역 내에서 활용할 만한 인재가 없어지면서 이 지역을 대표할 사람들의 극심한 부족으로 인해 남한 출신들이 통일한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어 지나치게 남한 주도로 나아가다가 북한주민들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독재 청산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북한주민들을 지나치게 배제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강제수용소 경비병 등으로 활동하면서 반인륜 범죄에 가담한 경우에는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에도 동서독 경계선에서 탈출하는 동독주민을 '사살한' 동독군 병사에 대해서는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했다' 는 이유로 정상참작은 됐지만 집행유예라는 형태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처벌 대상으로 분류한 1의 북한 정권 참여 인사들과 2의 경우에도 사형이나 무기형은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물론 법적으로 따지면 사형도 부족한 인간들이 많습니다만 북한의 최고 지도부에게 이런 형벌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이들의 극한 반발로 인해 통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죄가 워낙 중하여 동독처럼 대부분을 형식적인 처벌만 하고 사면한 것(호네커 포함)과 달리 처벌 자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필요합니다.
雲手 2011/11/22 03:42 #
뭐 답을 얻고자 쓴 덧글은 아닌데 말입니다...요점은 단칼에 잘라내기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많다는 것이고 친일파 청산 문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메이즈 님의 견해는 잘 보았습니다.
이글 2011/11/20 12:23 #
그당시 북한이 남한보다 친일청산을 어느정도 했다고 말할수 있는 근거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초대 내각 구성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친일파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점이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가장 많이 반론으로 제시되는 예 아니겠습니까?
메이즈 2011/11/20 12:53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대한민국사> 를 참고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경우 남한에서는 최소한의 청산조차 없었던 반면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거나 체포, 살해, 고문한 자들과 같은 악질 반민족행위자들은 처단했으나 대부분은 탄백이라는 형태로 형식적인 반성을 통해 그대로 등용했다고 합니다.즉 남북한의 차이는 북한의 경우 최소한 처벌해야 할 자들은 처벌했고, 남한은 그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물론 북한의 친일파 청산은 정적 청산의 목적도 있었지만(사실 이쪽이 더 강합니다) 어느 정도 청산이 이뤄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즉 친일파 청산 문제만은 남한보다 북한이 나았던 게 사실이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공 2011/11/20 14:19 #
1. 그러고보니 굽옹이 친나치였던 에즈라 파운드의 에피소드를 소개한 기억이 나는군요. 하는짓은 또라인데 알고보니 영문학도 최종보스;;;2. 알제리 독립 탄압한걸 예를들면서 어디가 같냐는 분도...
백범 2011/12/02 11:02 #
비시청산도 좋고 나치 청산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알제리, 이집트, 북아프리카 소국가들, 베트남, 인도(일부), 태국 등에서 저지른 행위를 사죄나 사과한번 하지 않았습니까?비시정부를 청산하고 나치부역자들을 처형하고 20만명을 학살하기 이전에 프랑스는 프랑스가 18세기부터 아프리카의 알제리, 이집트, 북아프리카 소국가들과 19세기부터 베트남, 인도(일부), 태국 등에 저지른 행위부터 먼저 사과했어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 것을 사과하지 않은 이상 드골의 비시청산은 단지 정적 숙청, 반대파를 말살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봅니다.
이탈리아 종마 2011/12/15 23:06 #
애초에 나치 통치와 일제 통치는 기간도 다르고 정도도 미묘하게 많이 다르지 않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