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전면 개편했습니다. 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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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생각 : 잡다한 생각을 올립니다. 대부분 사적인 글이나 때때로 시사 문제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공지사항 : 말 그대로 공지사항입니다. 어떤 분을 차단한다던가, 댓글을 삭제한다던가 할 때 공지합니다.
정치, 사회 게시판 : 정치, 사회 관련 게시판입니다. 사실 혹은 개인적인 가설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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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인들이 위기극복에 소극적이고 냉소적인 이유에 대한 개인적 생각


- 이 글은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 둡니다. -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위기극복의 선배라 볼 수 있는 한국. 특히 1998~2001년 외환위기 당시 IMF(정확히는 미국 주도 선진국들)의 말을 아주 충실하게 들은(게다가 그 이후에도 수출 올인, 국내 투자 인색. 철저한 재정 관리 등으로 반 정도는 계속 들은) 한국이라는 사례가 가장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당시 한국은 IMF에서 상당한 돈을 지원받아 외채를 갚아나갔는데 1999년에 사실상 극복. 2001년 공식 극복 등 외환위기 극복 자체는 아주 빨랐지만 그 대가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 및 빈부 고착화 현상이 심화되고 중산층이 파산했으며 이것이 세계 역사상 최악을 자랑하는(물론 그런다고 나라가 사라지거나 인구가 반토막나진 않겠지만 단기간 이민 대량 유입으로 인한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 출산율 저하 등의 타격을 입었고 현재도 소위 고용없는 성장 및 서민층 가계의 어려운 생활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물론 한국인들 상당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IMF 이전보다 나빠진 건 확실하다). 국가와 기업은 날이 갈수록 살찌고 있으며 국민소득은 잘하면 2020년 이전에 4만 달러를 넘어설. 그렇지 않다 해도 3만 7,000~9,000달러가 확실할 전망이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4만달러에 걸맞는 생활을 할 가능성. 혹은 노력여하에 따라 그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느냐면 그렇지 않은 게 현실. 한마디로 국가의 뜻에 따라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그만한 보상을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기까지 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이라는 국가는 IMF를 계기로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국가 자체도 부유해졌지만 국민 상당수는 그 때 추락 혹은 더 이상의 경제적 성장이 멈춘 채 현재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최악은 아니지만 일본식 고령화로 대표되는 극심한 고령화와 사회 전반의 활력 상실 및 미-중 신냉전 본격화로 인해 국가 예산 여유가 더욱 줄어들 전망이라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국가와 회사는 부유해졌지만 국민은 가난해지고, 그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셈.

이 꼴을 직접 눈으로 본 남유럽 사람들이 과연 IMF나 EU의 긴축정책을 받아들일까? 어차피 위기를 극복한다 쳐도 자신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다 이쪽은 한국과 달리 위기극복에 쓸 만한 제조업도 부족함을 잘 알고 있으며 (원화가치를 폭락시켜 수출경쟁력을 확보한 한국과 달리)유로 자체의 한계 때문에 위기극복에도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잘 아는데 말이다. 극복할 가능성도 높지 않은데다 나라 위기를 극복하건 말건 부자들은 더 잘 살고, 자신들은 더 가난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위기극복에 적극적일 수가 없다. 

한국의 오늘은 남유럽인들의 미래라는 생각이 자리잡은 이상. 위기를 극복해 봐야 국가와 기업, 부자들만 살찔 뿐 자신들의 삶이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 그럴바에는 그냥 망하는 게 낫겠다고 믿는 이상 이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지금 당장은 긴축의 고통을 요구하더라도 위기를 극복한 뒤 그 보상을 국민들 모두가 공정하게 나눠가질 수 있음을 말해주고, 기득권층부터 자신의 재산을 헌납하고 세금을 인상하는 등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한편 위기 극복 이후 정말로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져야만 이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P.S 또한 독일과 프랑스 역시 최악을 달리는 남유럽 민생을 고려, 긴축, 긴축만 외쳐댈 게 아니라 유로화 가치를 줄여 자신들의 흑자를 어느 정도 남유럽이 가져가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돕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남유럽 경제위기는 남유럽인들 스스로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유로존의 태생적인 한계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참고자료 > 

- 동아일보 2012.5.18일자 오피니언 <그리스인을 위한 변명>
- 엔하위키 그리스, 유로존 항목
- KBS 신년기획 - 위기의 남유럽을 가다 1, 2, 3편
- KBS 스페셜 - 위기에 빠진 유로(2012.3.25)

망상 : 남성의 성욕이 없어지면 벌어질 일? 잡다한 생각

- 이 글은 작성자의 망상을 대충 적어본 것임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밸리에 보내지 않습니다. -


1. 여기는 20xx년 6월의 대한민국. 극심한 남아선호사상과 ' 배가 부른(실제로 이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스펙을 보면 신 말고는 달성이 불가능했으니)' 일부 여자들의 독신열풍이 동시 진행되면서 결혼시장의 남녀 성비는(결혼시장에 등록된 인간들 말고 결혼 희망자 전부) 비공식적으로 약 2.5~3:1에 달했고 남자들은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온갖 패물과 자신의 모든 것을 여자에게 바치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정말 유능한 인재들로 다른 나라에 갔다면 결혼이나 출세 정도는 일도 아니었겠지만 불행히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그리고 성적 욕구를 통제하기 어려운(통제 못하는 건 아니다. 통제 못하면 강간이 죄가 되었겠냐) 남자의 특성상 의미없는 스펙경쟁에 뛰어들여 여자 하나를 놓고 미친듯이 싸우다 파멸할 뿐이었다. 일부 남성해방 사이트들이 여성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솔로부대를 찬양했지만 대다수 남자들은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욕구' 를 통제할 수 없어 결국 여자들에게 굴복, 또 굴복했다. 


물론 이렇게 한 게 여자들에게 이익이라도 되고 여자들의 기량 향상에 기여하기라도 하면 또 모른다. 어쨌든 여자들이 남자들의 자리를 대신해서 나라를 이끌면 되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의 평균적인 자질이 갈수록 추락해가고 갈수록 머리가 안 돌아가는 바보들만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왜? 가만히 있어도 남자들이 알아서 모든 걸 바쳐 주는데 뭐가 아쉽다고 일을 하고 노력을 하겠는가. 일부 능력 있고 머리가 돌아가는 현명한 여자들이 "언제까지 남자들이 무작정 퍼줄 거 같냐. 제발 정신차려라" 고 경고했지만 인간이란 현 상황에 안주하는 걸 좋아하는 동물인지라 결국 타락한 채로 남자라는 돈줄에 안주하며 망가져가고 있었고 한반도 주변국들은 그 꼴을 보며 혀를 차던 중이었다. 


2. 이에 하늘에서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던 환인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한국여자들이 나태와 불로소득 중독으로 인해 망가져가고, 남자들 역시 자신의 재능을 값진 데 쓰기보다는 돈벌이에만 미쳐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망치고 있으니 한숨이 안 나올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되다가는 반쪽으로나마(구제가 불가능한 북쪽 왕국은 이미 포기) 간신히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한 번 제대로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말한번 하지 못하고 몰락할 판이었다. 한민족의 수호신으로써 환인은 이것을 막아야 했고 그래서 아들 환웅과 손자 단군. 그리고 수많은 중신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이 나라를 어찌 하면 좋겠는가. 남자들이 욕정과 자신의 가치관에 굴복하여 그 아까운 재능을 낭비하고. 여자들은 불로소득에 눈이 멀어 자기계발을 하는 대신 모든 걸 포기하고 있으니. 물론 그 이유를 내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내가 만들어낸 민족이 없어지는 꼴은 못 본다. 그러니 대책들 내놔봐."


그러자 환웅과 여러 중신들이 잇달아 대책을 내놓았지만 환인의 마음에 차는 건 없었다. 왜냐고? 그냥 싹 쓸고 새로 만들자던가, 아니면 알아서 막장 되면 정신 차리겠지라던가 등의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인도 한반도 북쪽의 구제불능 왕정처럼 포기 선언을 할 때쯤. 단군이 말을 꺼냈다.


"남성들의 성욕을 없애버리시죠. 물론 성관계는 여전히 가능하고 마음만 먹으면 애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욕이 없으니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여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어떻게든 여자를 손에 넣으려는 행태는 없어질 겁니다. 그럼 이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에 환인이 "한번 해볼만하다" 라고 말하며 6월 1일 밤. 대한민국 전역의 남성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바로 다른 욕심은 전부 다 내버려 두고 오직 성욕만을 소멸시키는 마법이었다. 


3.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서울 서초구에 사는 28세(실제 나이. 외모상으로는 20대 초반에 아이돌급)의 김모 여인은 이번에도 인터넷에서 만난 남자들에게서 막대한 돈을 뜯어낼 생각으로 다시금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채팅에 응한 남자에게 "옵빠. 내가 요즘 돈이 없는데..." 라던가, "남자가 여자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여. 돈내놔." 같은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녀의 미모+남성들의 성욕+여자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자리에서 돈을 미친듯이 각출해 내던 남자들이었고 이번에도 성공해서 한 200만 원쯤 뜯어내겠지 하고 의심 없이 작업을 건 김여인. 그러나 대답은 차가웠다.


"내가 너한테 왜 돈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지금 가난해서 죽겠는데 나한테 돈 좀 빌려주라."

"인생 참 불쌍하다. 그런 짓 할 시간에 공부나 해라. 여자가 무슨 벼슬인 줄 아냐?"


이런 소리만 자꾸 들려왔다. 김모 여인이 여슬아치 드립을 치며(실제 용어는 따로 있지만 워낙 퇴폐적인 용어라 쓰지 않습니다) 돈 내놓으라고 말했지만 애시당초 그녀의 미모에 혹해 돈을 내놓던 인간들이 미모 말고는, 여자라는 가치 말고는 아무런 메리트도 없는데 돈을 줄 리 만무하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퇴짜. 그나마 한명이 돈을 주긴 했는데 그것도 여자라서 준 게 아니라 그냥 돈이 넘쳐 사는 어떤 재벌 3세가 장난삼아 뿌려준 돈이었다. 


"x발. 이것들이 미쳤나. 요즘 세상에 여자에게 미움 받으면 그걸로 결혼이고, xx고 다 끝인거 몰라?"


김모 여인은 화를 잔뜩 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누나가 신경질 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보러 온 남동생이 시험공부 중인데 조용히 좀 하라고. 시끄럽다고 뒤에서 소리지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 현상은 대한민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4. 그 뒤 남자들은 여자 문제로 신경쓰던 자신들의 노력을 전부 자기계발에 돌렸다. 물론 성욕 대신 다른 보상욕구를 위해 게임이나 마약, 도박에 빠진 바보들도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은 원래 성실한 이들이었고 게으름에 익숙해진 여자들과 달리 자기계발에 익숙하고 한 번 작정하고 뛰어들면 끈기 있게 끝을 보는 경우가 많은 남자들의 특성상(본래는 여자가 자기계발에 익숙했지만 여자가 벼슬 대우받는 사회 덕택에 엄청 게을러진 상태였다) 순식간에 사회 각계층의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이렇게 되자 매스컴들은 '남성들의 반격이 시작되다. 각 고시별 수석 모두 남성' 이라던가 이전부터 '이럴 줄 알았다' 며 한숨을 쉬던 일부 성실한 여성들의 인터뷰(주로 게으른 여자들 까던)를 계속 실었다. 게다가 이는 김정은을 필두로 그저 남한 두들겨패기와 핵을 이용한 조폭질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북쪽의 왕국을 상대로 맞서기 위한 징병제에 의거 군복무로 상당한 시간까지 써가면서 얻은 성과인 대한민국이 '남성 사회' 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남자들이 여자에 비해 다소 뒤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성적인 욕구 등 자기계발 외의 엉뚱한 문제에 신경쓰다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 사회 특성상 남자가 여자보다 짊어지는 의무가 훨씬 많아서 처음부터 불리하긴 했지만 남자들 스스로의 자기계발의지 부족도 결코 경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욕 문제가 해결되고 이와 연관된 모든 문제가 사라지면서 남자들은 여자와 사실상 동등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고 게으름에 익숙한 여자들과 달리 여자 쟁탈전 과정에서 스펙을 괴물같이 쌓았으니 여자를 이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5. 이렇게 되자 여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현실을 직시하고 뒤늦게나마 남자와의 정면경쟁에 뛰어든 여자들. 그리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그저 화장만 해대고 남자에게 붙어먹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여자들이었다. 한국의 경우 전반적으로 후자의 여자들이 압도적이었는데 남자들이 지나치게 심한 경쟁에 질려 일시적으로 물러섰을 뿐 본능 때문에 곧 굴복하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아주 큰 착각이었다. 남자들은 여자라고 봐주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이기기만 하면 된다' 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인간들로 변해 있었고 여자들은 그런 남자와 정면대결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나마 나이가 든 여자들은 남자들이 양보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왔기에 현실 인지를 제대로 하고 열심히 일해 남자들을 따라잡는데 상당 부분 성공했으나 대부분의 '남자를 벗겨먹을 대상' 으로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젊은 여인들에게 남은 건 능력 부족으로 회사에서 잘리고,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격 받고 늙어가는 것뿐이었다. 


결국 여자들도 이런 일이 한 20년쯤 계속되자 마침내 정신 차렸다. 서양의 '남녀의 평등함. 여성의 독립' 을 외쳐대던 진페미니즘이 한국에 들어왔고 여자들은 '이제 우리도 살아남아야 한다. 남자들과 경쟁해서 이기자' 는 생각으로 다시금 독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여자들이 본래 능력이 없어서 남자에게 뒤졌던 건 아니므로 얼마 가지 않아 하나 둘 다시 제자리로 올라왔다. 아까 이야기한 김여인도 뒤늦게나마 각성. 고시를 패스하고 여검사가 되어 같이 고시 패스한 남자 동기와 결혼했으며, 여자들이 고시 수석의 자리를 독점하진 못했지만 여자들의 이름이 고시 수석에 등장하는 일도 계속됐고 나중에는 군대까지도 '우리는 특권 따위 필요없다' 며 자원입대하는 여자들이 생겨나면서 여성징병제가 실시되기까지 했다. 결국 진정한 남녀평등시대가 열린 것이다. 


6. 남성의 성욕이 없어진 결과 한국 사회는 이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사회가 되었다. 쓸데없는 '자원 쟁탈전, 능력 낭비' 가 없어지면서 남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고 여자들 역시 '여슬아치' 들의 일부 도태를 빼면 피나는 노력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키면서 남녀 모두가 생산적인 일에 종사, 성공한 선진국으로 변해갔다. 물론 결혼제도나 자녀양육 등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는 더 이상 성적 욕구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이 지켜주고 대신 안주할 '가족' 을 구하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 및 인간으로서의 '정' 에 의해서만 이뤄졌고 그만큼 무모하거나 비합리적인 결혼이 사라져갔다. 


결국 남성의 성욕이 사라진 결과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안전해지고, 좀 더 이성적으로, 좀 더 남녀 모두가 행복한 사회로 변한 셈이다. 이 나라는 앞으로도 번영할 것이며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을 누구나 할 수 있기에(성욕은 감정적인 판단과도 연관되어 있다) 다른 수많은 문제 많은 나라들과는 달리 거침없는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P.S 개인적으로 추가하자면 이 글에는 한 가지 배제된 게 있다. 바로 여자들의 성욕(단군은 남자들의 성욕만 거세하자고 말했으므로). 하지만 남자와 달리 여자들에게 성욕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계발과 재물에 대한 욕구가 훨씬 강하므로 아마 남자의 성욕이 있건 없건 극소수를 빼면 문제가 전혀 없을 것 같다. 



가상 시나리오- 2049년의 평양(개혁개방 이후의 북한)

- 이 글은 '북한이 중국의 지도 하에 개혁개방을 했다면' 이라는 전제하에 쓴 가상 시나리오임을 밝혀둡니다. 
- 1989년 터진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참고했습니다(물론 진행 양상은 좀 다릅니다).
- 이 글은 인문사회 밸리에 올립니다(북한의 개혁개방 이후 벌어질 부작용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라 인문사회 쪽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므로).

1. 2049년 이전의 북한 - 긍정적인 부분

잘 알려진 대로 북한정권은 1948년 성립 이래 숙청, 세뇌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지금까지 폐쇄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나라 전체를 개인의 왕국으로 만들어 온 게 사실이지만 1990년대 이래의 경제파탄과 지독한 식량난으로 인해 그 체제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3월 말. 통일비용 공포에 시달리는 한국과 현상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묵인하에 중국의 지지를 받은 실용파의 쿠데타로 200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4개월의 내전 끝에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수립된 정부는 김정남 등 실용파, 개방파로 구성되고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하는 친중정권이었다. 

(1) 특징

2023년 권력을 잡은 김정남 체제는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북한 전역을 장악하는 데 2년 정도를 소요했으며 그 직후 제5차 당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여 다음과 같은 선언을 통해 '새로운 체제' 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는데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로 이뤄진다.

첫번째. 김일성 조선이라는 북한체제의 근간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 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혹독했으며 단지 이전에 비해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내부적으로도 반발을 고려하여 그 강도를 낮췄을 뿐이다.
두번째. 그러나 첫번째 기준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인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유연한 통치를 한다. 물론 중국은 아예 김일성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중국식 공산체제를 원했던 모양이지만 그렇게 하면 대다수의 북한 기득권층 및 김씨 일가를 적대하여 북한 자체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세번째. 남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남한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아 국교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미-일과는 국교를 맺었다).
네번째. 핵무장을 포기하고(단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은 유지) 과거 발행했던 차관을 갚는다(단 당장 전액을 갚을 수는 없는 만큼 중국이 일괄 구매하여 문제를 해결한 다음 나중에 북한이 중국에 원금과 소액의 이자만 지불하는 형태로 변경).

즉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되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한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을 택한 것이다. 

(2) 개혁 및 성장

사실 개혁의 형태는 특별히 참고할 만한 게 없다. 계급제도 철폐. 사회주의 정치시스템을 유지하는 선 안에서의 시장경제 실시 등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벌인 개혁개방정책을 벤치마킹하되 그 속도를 좀 더 높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주민 통제가 약화될 경우 남한과의 통일을 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전에 생활수준을 높여 통일에 대한 기대를 줄일 필요가 있었으므로). 2025년부터 2030년까지는 나진 등 일부 특구를 설치해 시험삼아 운용하는 한편 1990년대 이래 30년 이상에 걸친 혼란 속에 완전히 무너진 국가 경제 기반을 다시 구축했으며 2031년부터는 일부 내륙 지방을 제외한 동서 해안 지역과 도시 대부분을 개방하고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에 착수하게 된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전과 달리 정권 차원에서 개혁개방을 보여주는 형태가 아닌 직접적인 정책으로 정하고 밀어붙인데다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중국 시장. 그리고 선진경제에 들어선 한국, 일본 시장까지 개척한 끝에 연간 10%~15%. 간혹 2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고 2023년 500달러 안팎에 불과하던 북한의 GDP는 2030년까지 1500달러. 2040년까지는 5000달러. 2048년에는 16,000달러에 이르렀던 것이다. 

물론 서방 선진국들의 국민소득이 기본 6~7만 달러에 이르고 남한은 80,000달러가 넘어가며 중국조차도 1인당 40,000달러의 국민소득을 이룬 상황에서 큰 돈이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경제 정책의 변경 및 '세계의 시장' 중국을 활용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사상 처음으로 절대빈곤에서 탈출했으며 경제 전체가 활력으로 가득 차 예전의 모습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을 후원하여 영구분단을 추진하던 중국조차도 '이렇게까지' 올라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만큼 놀라운 성과였다. 

2. 2049년 이전의 북한 - 부정적인 부분

그러나 '동아시아의 공장' 이라 불리며 전세계를 경악시킨 북한의 경제성장에 그림자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 시나리오의 주제인 '피로 물든 평양' 역시 이 그림자가 주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급속한, 그리고 제조업 위주의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은 북한 체제를 그 어느 나라보다 불평등한 사회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공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면개방이 아닌 특구 위주의 개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해안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촌 및 중소도시가 고도성장에서 소외되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게다가 개혁개방 자체가 주민들의 자율을 상당부분 허용하는 것인지라 내부 통제력과 초기에는 말 그대로 절대적 지지를 보내던(세습독재정권의 횡포에 시달리다가 해방됐으니 당연하다)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도 점차 약화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한다. 

(1) 지역별 격차 

김정남 체제 하의 북한은 이미 언급했듯이 부분적인 개혁개방을 선택했고 생산, 교통 등 모든 혜택이 이미 개발된 주요 특구에 집중되어 동서해얀 연해 도시와 평안도 지역 위주의 주요 개방구역, 공업 중심지역에 비해 강원도, 황해도, 함경도 일대의 발전은 현저하게 느려졌고 초기에는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었지만 고도 성장의 과실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큰 폭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좋은 사례가 최초 개방 지역인 나진과 북한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인 강원도(북측)인데 2048년 기준 나진 개방 특구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34,000달러에 달해 중국의 1인당 소득에 근접한 반면 강원도는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지나지 않아 전국 평균 16,000달러의 20%도 안 될 만큼 낙후되었다. 한마디로 북한 농촌 및 산간 지대는 붕괴 그 자체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게다가 개도국일수록 성장의 과실이 힘센 자에게 집중되게 마련인지라 개방 지역 내에서도 공장 노동자 및 농민공(북한의 경우에도 농촌 지역에서 탈출해 도시에서 돈을 벌려는 이들이 넘쳐나므로)들과 주요 재벌그룹의 기득권층 간의 소득 격차가 계속 심화되는 추세였다. 

게다가 이건 언제까지나 '통계치' 였고 실질적인 체감수치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체제는 몇몇 평양 기득권층들을 빼면 상당히 평등한 편(물론 일반주민들이 가난한 쪽으로만 평등)이었고 지니계수가 0.3 정도에 머무른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방 이후 빈부격차는 심각할 정도로 심화되었고 제조업 국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0.5가 넘는 살인적인 지니계수가 만들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극소수 최상류층이 부를 독점했다는 이야기다. 평양 중심가나 변두리에서는 잇달아 고층 빌딩과 최상류층의 호화로운 주택이 세워지는 반면 그 사이의 구시가지. 즉 슬럼가에서는 하루 한끼도 먹기 어려운 극빈층이 제대로 먹지 못해 매일 몇십 명씩 굶어 죽고 병들어 죽는 곳이 북한이었다. 

(2) 부패

게다가 이런 빈부격차에 따른 내부 불만에 불을 붙인 게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극심한 부패였다. 물론 김정은 등 개방정권 이전에도 부패는 심각했지만 지금의 부패는 경제규모의 성장에 따라 그 규모가 훨씬 커진데다 굉장히 악랄해졌다는 차이가 있다. 먹고살기 위해 장사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뇌물을 받아 먹거나 아니면 돈을 받고 국가 정보를 일부 유출하는 정도가 개방 이전의 부패였다면 이제는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회에 돈이 돌면서 이전에 비해 돈의 가치는 더욱 높아져갔고 이전에 비해 특권이 줄고 스스로 먹고살 필요성이 더욱 커진 노동당 출신 관료들은 말 그대로 상상 이상으로 썩어들어갔던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경제적 매력이 높아진 2040년대 중반부터 이들 부패 관료들은 주민들에게만 받아먹던 뇌물을 이제는 외부에서도 받아먹었고 국제적인 항의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은 이런 부패를 막기 위해 2023년 김정은 체제 붕괴 이래 폐지되었던 공개총살 제도를 부활하고 2047년에는 김정남의 최측근에 해당하던 장민호(당시 43세)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 여러 고위 관료들을 공개 총살하는 등 초강경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으나 정권 자체가 거대한 부패 덩어리고 뇌물 없이는 사소한 것조차 해결하기 어려울 만큼 나라 전체가 썩은 상황에서 몇백명 처형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었다. 

(3) 독재에 대한 반발

마지막으로 북한 체제가 개방을 하면서 주민들의 자율을 허용한 결과는 단기적인 안정 이후의 장기적 위협. 즉 중국과 같은 형태의 위기였다. 경제 발전과 자주, 자율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 자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간데다 불평등과 빈곤에 시달리던 대다수 서민층도 개혁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초기에는 단순한 경제정의, 정치개혁의 형태였으나 점차 서구식 민주주의의 도입 등 '북한 당국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 로 이어졌다. 특히 김정은 체제 붕괴 이후 해외(한국 포함)로 망명했던 민주 인사 상당수가 귀환했는데 북한 당국은 처음에는 '체제의 관용' 을 핑계삼아 이들을 받아주었으나 이들이 점차 반정부, 반체제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골머리를 썩게 된다. 2040년대부터 본격화된 반정부 세력들의 활동의 중심에 이들 탈북인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부적으로도 개혁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덩샤오핑 체제가 처음에는 개방이라는 이름 하에 통합되었으나 점차 자오쯔양, 후야오방 등의 개혁파와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로 분열되었듯이 김정남 체제 역시 김정남과 그를 지지하는 중국식 개혁파. 즉 보수파와 그 이상의 개혁을 요구하는 이정민, 김선화 등 진보파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3. 2049년 겨울. 개혁이 개혁을 밀어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마침내 폭발 직전에 이른 것이 2049년의 일이었다. 2040년대 중반 이래 진보파의 추가 개혁 요구가 갈수록 강해져가면서 김정남은 결국 자신이 예상한 사태가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애시당초 북한정권의 붕괴와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선택한 중국식 개혁개방이고 그 결과 세습독재의 지속과 남한 주도 급속통일은 어떻게든 막았지만 그 대신 정권의 기반이 점진적으로, 좀 더 늦게 약화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덩샤오핑의 딜레마였다. 

이제 김정남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진보파의 요구를 받아들여 체제개혁까지 추진하면서 민주주의 국가 북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일당독재체제 및 왕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 부패 문제와 빈부격차 문제만을 개선할 뿐 나머지는 거절. 진보파를 때려잡고 기존의 개혁개방 노선을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2049년 1월. 마침내 결단이 내려졌다. 제6차 당대표자회의를 개최한 김정남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이다.

"지금의 김일성 조선을 기반으로 한 개방정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반대하고 반체제적인 급진적 오류를 범하는 자들을 일선에서 추방한다."

말 그대로 보수파의 개혁파 억압이었다. 개혁을 외치며 200만에 달하는 인명을 희생시켜 집권하고 북한 인민의 구원자로 자리매김한 김정남이 추가개혁을 요구하는 김선화, 이정민 등을 쫓아내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당과 군의 보수세력들(주로 김정은 시절 온건 보수를 지향한 자들)도 가세하여 진보파는 일선에서 밀려났으며 진보 노선을 주도했던 총리 이정민은 당내 직책 박탈 및 가택 연금(당적은 유지)처분을 받았다. 이후 총리가 된 사람은 김정남의 양자인 김시영이었고 그는 개혁개방 노선을 철두철미하게 추종하는 보수파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보수파라 해서 현재의 문제에 대해 빠른 해결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고도성장의 부작용으로 물가는 빠른 속도로 오르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통제 체제는 지식인과 학생들을 억압할 뿐이었다. 겉으로는 경제성장이 이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썩을 대로 썩은데다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했고 이는 진보파를 숙청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4. 피로 물든 평양(2049년 6월)

(1) 대규모 시위(2049년 3월~5월)

2049년 3월. 김정남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중단 없는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지나친 개방을 주장하면서 공화국의 국체를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물론 과거로 되돌아간 건 아니었지만 경제적인 개방과는 별도로 정치적인 개방은 더 이상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북한의 안정을 바라는 중국의 지지도 한몫했다). 김일성 시절부터 강력한 통제력을 갖고 있던 사회안전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직접 나서서 진보파 인사들을 잡아들이거나 가택 연금 조치하고 평양방어사령부 소속 10만 군대가 출동하여 시가지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의 생각이 변한 상황에서 이런 조치는 큰 의미가 없었다. 지식인과 학생들, 노동자들의 주도 하에 평양과 각 지역의 도시들에서 시위가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2049년 4월에 이르러서는 수십만에 달하는 북한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더 큰 개혁의 실시. 나아가 전면적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도입을 요구했다. 물론 계엄령 하에서 시위를 막기 위해 중요 인사들 대부분을 체포. 구금한 김정남이었으나 모든 인사를 감금할 수는 없었으며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시위를 모두 막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계엄령을 선포하기는 했으나 인민군을 풀어 시위대를 때려잡을 경우 국제적인 반발이 극심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현재의 북한은 국제사회의 충실한 구성원 중 하나였으므로 이 점도 고려해야 했다. 

그 결과 김정남은 계엄령 하에서 '확실한 진압 구실이 없는 이상 일단 내버려두라' 는 지시를 내린다. 아직까지 일반 주민들까지 시위를 적극 지지하지는 않는데다 유혈진압이 이뤄질 경우 국제사회가 반발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화로 몰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030년대 초 바닥을 친 이래 이민인구 유입과 출산율 상승으로 고령화를 점차 극복해나가던(물론 기존의 고령화 인구는 어쩔 수 없어서 고령화 비율은 35% 정도로 여전히 높았지만) 한국이 '북한과의 급속 통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고 발표하면서 혼란을 부를 지도 모르는 유혈진압이라는 선택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 최종결정(2049년 5월 말)

그러나 물러서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던 게 당시의 현실이기도 했다. 처음에 어느 정도 풀어주고 부패 시정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알아서 해산하겠지라고 기대했던 보수파는 시위대의 요구가 단순한 개혁의 실시 등 사회적 모순에 대한 시정이 아니라 체제의 전면적인 개편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파악하고는 진압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김정남을 압박했고 중국 역시 '민주주의 체제가 구성되어 주민들이 전면적인 변화에 참여할 경우 한국과의 흡수통일 및 체제 붕괴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고 말하면서 우회적으로나마 강경 진압에 지지를 보냈다. 

게다가 국제 사회의 반응 역시 겉으로는 시위대에 공감했지만 각국 정부의 공식적인 행동은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등 몇 나라를 제외하면 '침묵' 그 자체였고 한국을 비롯해 북한 정권의 교체를 바라는 나라들도 이로 인해 대혼란이 벌어져 애써 안정화시킨 동아시아가 다시 헬게이트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간신히 고령화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 국가 경제를 궤도에 진입시킨 상황에서 북한 급변사태가 벌어질 경우 입을 치명타를 두려워하여 정부차원에서는 흡수통일도 검토중이라고 발표했지만 북-중과의 내부 접촉에서는 '일단 현상유지로 가는 게 좋겠다' 는 이중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휴전선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지고 한국군 32만과 주한미군 2만 병력에 데프콘 3이 발령되는 등 급변사태 대비에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남은 두 달 정도 침묵을 지키다가 국제 사회의 개입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확인하고는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차피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였다. 1989년 동유럽 공산권 지도자들처럼 시위대의 요구대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덩샤오핑처럼 시위대와 진보파를 때려잡고 권력을 유지하며 개발독재에 박차를 가할 것인가. 두번째를 택할 경우 중국의 비호 및 기존에 쌓아온 매력 덕택에 최악은 피하겠지만 상당기간 대외 이미지 약화 및 진보파의 결사저항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첫번째를 택할 경우 당장은 무사한다 쳐도 흡수통일로 이어져 김씨 왕조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2049년 5월 31일. 김정남 임시주석(김일성이 영원한 국가주석으로 지정되었기에 이후 승계하는 사람은 모두 김일성의 주석 권한을 위임받아 통치하는 임시주석이 된다)은 조선인민군 전체에 명령을 내렸다.

"전국에서 공화국의 최고존엄을 부정하는 폭도들을 진압하라. 저항하면 죽여도 상관없다."

(3) 피로 물든 평양(2049년 6월 1일)

2049년 6월 1일 오전 11시. 김정남이 진압을 최종 결정. 승인함에 따라 지금까지 시내를 포위하고 있던 평양방어사령부 소속 99식A2 전차가 평양 혁명 광장에 나타나 시위대를 압박했고 그 뒤에서는 확성기로 해산 명령이 내려졌다. 

"폭도들은 투항하라! 투항하지 않을 경우 사살된다고 하더라도 항의할 수 없다!" - 평양방위사령부

그러나 진압 쪽으로 방침이 정해졌음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도 남은 수만의 시위대가 물러설 리는 없었다. 시위대는 '정당한 시민의 요구를 물리치지 말라.' 고 주장하면서 해산을 거부했고 그 직후 바로 발포가 시작됐다. 전차부대를 앞세워 시위대를 깔아뭉개고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서는 평양방위사령부 소속 인민군 병사들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김정남이 이미 살인 면허를 부여한 이상, 그리고 북한 최고 기득권층인 이들의 특성상 살인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광장은 순식간에 수천 명에 이르는 시위대 사망자와 부상자로 가득찬 피바다로 변해갔다. 국제 사회가 보는 앞에서 '시위대를 학살' 한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인민군은 혁명 광장에 집결한 시위대에게 세 번에 걸쳐 투항을 권고한 다음 바로 사격을 개시했다. 보통 군이 시위를 진압한다고 해도 시위대가 무장하여 군에 대한 살상능력을 갖추지 않은 이상 비살상 무기를 사용함이 원칙임에도 인민군은 전차부대를 앞세워 시위대를 적군을 제압하는 양 깔아뭉개고 도망가는 시위대에게는 전차에 거치된 기관총탄과 전차와 동행하는 보병들의 소총탄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광장 전체가 시위대의 시신과 부상자가 흘리는 피로 가득찼으며 그 중에는 여자나 어린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뒤이어 지방 각지에서도 유혈진압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투항 권고를 한 다음 투항하거나 해산한 시위대는 그나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졌고 특히 무기를 들고 저항한 일부 과격 시위대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말살 작전' 에 걸려 말 그대로 생존자가 거의 없을 정도의 참혹한 꼴을 당해야 했다. 설사 조용히 해산한다고 해도 지도부급은 대부분 사형. 단순가담자를 제외한 시위대 주요 인사들이 중형을 언도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말 그대로 북한판 천안문 사건이었다. 

또한 김정남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당내 진보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했는데, 기존에 당적 유지는 허용받았던 이정민의 경우 시위대의 정신적 지주라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려 1급 정치범만 수용된다는 청진 25호 관리소로 끌려가 그 곳에서 죽었고 김선화 역시 목숨은 건졌으나 당적을 박탈당하고 가족 전체가 갑산으로 쫓겨났다(가족들은 다음해 평양으로 돌아왔으나 김선화는 갑산에서 일생을 마친다). 그 외의 진보세력들도 대부분 가혹한 처벌을 받고 노동당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4) 인명피해

정확한 인명피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 감시할 수 있었던 평양 등 주요 도시의 인명피해는 최소 3천여 명에서 많게는 1만 명까지 집계되어 있으나 이쪽은 북한 당국이 어느 정도 국제사회의 눈치를 봐서 진압 강도를 조절한 곳이고 지방에서는 정말 국민을 적으로 삼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가혹한 진압이 이뤄졌기에(특히 몇몇 지방 소도시는 도시 전체가 말 그대로 피바다로 변했다)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인명피해는 사망 및 실종 3~5만 명에 부상자 10만 명 이상 등 도합 15만여 명이다. 게다가 이후 3,000여 명이 정치범 등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중형을 받았고 부상자 중에서도 중상을 입고 방치되다가 사망한 이들이 많아 실제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편 휴전선에서도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발포를 거부하고 탈영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려 한 일부 인민군들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전투는 휴전선 이남까지 확대되어 여러 전선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한국군 13명. 인민군 300여 명이 전사했으며 한국군 47명. 인민군 8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의도적인 도발은 아니기에 국제 문제는 되지 않고 북한측의 사과 및 배상조치로 마무리).

5. 이후

서방 국가들은 이 사건 직후 북한 정권을 강력 규탄했고 주요 서방 국가들의 도시에서는 북한의 반인륜적 만행을 비난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북한의 주요 무역 대상인 중국은 침묵했고 대부분 서방 국가들 역시 북한 시장이라는 매력을 민주주의를 이유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제재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북한은 다음해인 2050년부터 다시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2060년에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 중진국에 공식 진입하고 대규모 중산층이 등장하는 등 고도성장을 지속하게 된다. 또한 김정남은 '북한의 덩샤오핑' 이라는 평가답게 이 사건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 조치는 변함이 없음' 을 분명히 하고 일부 개혁의 중단을 요구하는 보수파를 설득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었다.

한편 진보파는 불법화되는데 과격파는 정권 내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탈북하여 해외로 망명. 반정부 활동을 계속하거나 지하로 숨어들게 된다. 일부 남은 온건 진보파 역시 주민들과의 괴리(지식인, 학생 위주의 구성) 및 대안 부재가 실패의 원인임을 뼈저리게 깨닫고 북한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여 민심을 얻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이후에는 제도권 내에서 합법적인. 가급적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형태의 부정부패 시정 및 주민들의 참여도 향상 등의 개혁 요구, 중국 의존도 감소 요구 중심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물론 이들이 민주화 투쟁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어쨌거나 2049년 6월 1일 벌어진 '평양 사태' 는 북한판 천안문 사태로써 개혁개방 및 고도성장의 부작용. 민주주의. 그리고 지나친 중국 의존(시위대의 요구 중에는 지나친 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춰 중국의 횡포에서 벗어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에 대해 북한 당국과 국제사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p.s 후문

- 평양 사태 당시 미국은 북한 내 진보/보수파 간의 내전 발발 및 그 여파가 한국에 미칠 것을 우려하여 데프콘 2 발령을 중심으로 한 전쟁 대비 태세를 갖출 것을 권했으나 초고령화로 인해 2048년 기준 GDP의 80%가 넘어갈 만큼 극심한 재정적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한국 정부는 전쟁 상태 돌입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기 한국의 고령화 비율(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이민인구 유입과 뒤늦은 출산율 증가(2012년 1.20에서 2048년 1.35)로 최악은 피했으나 여전히 35%에 달할 만큼 높았고 게다가 빠른 고령화 속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탓에 노인 빈곤도 다른 선진국보다 심각했다.

- 김정남은 이 사건이 터지고 3년 뒤인 2052년 죽을 때까지 '평양 사태' 는 '반혁명세력의 반체제적인 행태로부터 체제 최고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 였다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으며 이는 현재도 유지되는 북한정권의 공식 입장이다. 다만 이런 입장과는 별도로 평양 사태 직후 부정부패 문제에 전면 개입하는 한편 빈부격차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고 한다. 반체제 세력이 힘을 얻은 게 극심한 불평등 때문임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패와의 전쟁은 드러난 자들. 지나치게 해먹은 자들만 엄벌하고 나머지는 모른척하는 형태여서 실제 개선된 건 거의 없다.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개인적인 잡설(대책) 무기,전쟁,역사 게시판

원문 : http://cafe.naver.com/nuke928/244882 (직접 작성한 글)

- 북한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문제인 만큼 세계 밸리에 올립니다. - 

이 글은 전적으로 제 사견임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대책만 '북한이 핵을 소형화했고 수십 발을 보유했다는 전제 하에 서술합니다. 


1. 예상가능한 북한의 핵 보유 능력은?

북한의 핵개발은 꽤 오래 되었고 국제사회가 외부 제재 외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도 못했기에 북한은 상당한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핵실험을 두 차례 한 것을 보면 최소한 히로시마, 나카사키에서 사용했던 수준. 즉 수 킬로톤의 핵무기 몇 발은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현재까지의 상황이죠. 

물론 핵을 세자릿수 이상 보유했을 것이다.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여 서울 등 한반도 전역에 몇십발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현실성이 별로 없습니다. 핵무기 소형화와 핵탄두 배치는 상당한 기술을 요구하는데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외에 이에 관련된 기술력을 가진 나라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둘째치고 후발주자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핵보유국 선언을 한지 13년이 넘었지만 보유한 핵탄두는 많아야 두자릿수에 소형화도 지지부진합니다. 게다가 이 두 나라의 경제력은 북한에 비해 최소 몇십 배는 되고 국제적으로도 핵보유를 묵인받아 거침없이 핵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이 넘쳐난다고 그게 바로 핵이 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죠. 

따라서 경제력 및 기술력이 열악하고 외부 지원을 제대로 받기도 어려운 북한이 보유할 가능성이 있는 핵은 히로시마, 나카사키에 떨어진 수 킬로톤의 핵탄두를 많으면 10~20발쯤 보유했다고 봐야 하고 현재로서는 이게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핵 소형화는 좀 애매합니다만 일단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발언도 있고 북한이 러시아 기술자들의 지원을 받거나 이란 등 여러 나라의 핵개발과 연관된 점도 있으니 여기서는 핵 소형화가 이뤄져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기술하겠습니다. 

2. 핵 보유에 대한 대책

(1) 방공망 구축

물론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책은 있습니다만 워낙 남북간 거리가 짧기 때문에 대기권 밖을 일시 체공하며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려진 고고도 상황에서의 요격은 불가능하고 재돌입과정에서의 요격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으로 보입니다. 추적이야 어렵지 않으나 요격이 문제로 재돌입과정에서의 요격은 극히 어려운데 현재로서는 레이저 무기체계나 전투기를 이용한 미사일 요격(KN-02 같은 경우는 사실상 중간요격이 불가능) 등 다양한 형태의 방공망 구축을 시도, 독자 연구 및 개발을 하는 상황입니다. MD체계와 달리 재돌입과정에서의 방어는 중저고도의 자국 방공망 방어만 하는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의 견제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MD 참여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이쪽이 가장 유력합니다.

참고로 방공망 구축은 탄도미사일로 한정됩니다. 장사정포 역시 제압했으면 좋겠으나 장사정포 공격은 물론 북한이 보유한 수천 문의 화포에서 적어도 수천 발 단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량의 포탄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유한 아이언 돔을 도입한다고 해도 피해를 막을 방법은 없고, 1차 피해 이후 도발 진원지를 파악/제압하는 쪽으로 가는 게 그나마 현실성이 있습니다. 도시 상층권에 북한군 포격을 막을 방어막을 구축한다던가 하는 등의 대책도 있습니다만 이건 다음 세기에나 가야 가능한 일이니 당연히 빼야겠죠. 따라서 (1)로 대처하기는 무리고 (2). 즉 대피시설 구축과 (4). 즉 타격수단 구축. 여기에 건물의 강도를 강화하여 건물이 피해를 입더라도 인명피해가 가급적 나오지 않게 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2) 지하시설 구축 

물론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리고 탄도미사일의 숫자가 뻔하기 때문에 요격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요격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는 그 위력이 약하고, 미사일 탑재시에는 위력이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대책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중국의 핵무기나 북한의 장사정포, 생화학무기를 생각하면 지하시설 구축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의 경우 국토가 좁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근접해 있기 때문에 북유럽이나 스위스식 방공호 구축을 지금이라도 '당장' 착수해야 합니다. 일단 지역별로 핵 방호까지  가능한 방공호를 구축하고 서로 연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돈은 많이 들겠지만(아마 스위스나 북유럽처럼 넓고 쾌적하긴 어려울 겁니다. 대한민국은 돈이 적기 때문에) 전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가능성이 적다' 는 이유로 방공호 구축을 계속 미루다 보면 구할 수 있는 생명 수천만 명이 추가로 사라지고, 나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의 폭격을 막기 위해서 휴전선 일대를 요새화하고 방공호를 대거 구축하는 상황인데, 우리도 북한에게서 이것만은 배워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차피 북한군의 장사정포와 미사일, 핵을 100% 막을 수 없다면 최악의 경우(북한의 핵공격이 전국에 수십발 단위로 떨어질 경우)를 상정하여 방공호와 수개월은 버틸 수 있는 대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3) 핵무기 보유

일반적으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의외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한국이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미-중 역학구도 및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에 의해서 가능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나 중국의 핵공격에 대비해서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을 보장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미국이 이걸 스스로 걷어버린다면 북한이 아니라도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대치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핵무장을 막고자 핵우산을 보장하는 대신 가혹할 정도의 사찰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핵이나 중국의 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한국과 일본에 대한 핵우산을 걷어버리거나 일본의 핵무장을 묵인한다면 그 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이 핵에 노출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 두 나라도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핵전쟁만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우방국간 분쟁' 이 되는데 이 경우도 어쩔 수 없이 핵을 보유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식으로 핵보유를 할 경우 국제적 파장도 엄청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이나 일본 모두 기본적으로 수십 kt의 핵무기 보유가 가능하고 핵미사일 개발 역시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미국의 핵을 다시 들여오고, 타격수단을 확보하는 것

현재로서는 (1)과 더불어 가장 유력합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핵을 철수한 것은 한반도가 비핵화된다는 전제 하에서인데 북한이 그걸 무시한 것이 확정된다면(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더 이상 미국도 그걸 지킬 이유가 없어지고, 한국의 핵무장까지 생각한다면 핵배치가 본격화될 겁니다. 물론 미 본토를 북한의 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MD 프로젝트 역시 재개되겠죠.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에 의해 입을 피해를 우려할 경우 한반도에 배치된 핵은 큰 의미가 없고 타격수단 확보 역시 북한의 핵무기를 100% 제압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다가 중국이 북한에 방공망을 깔아주기 시작한 현재로서는 효과가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한반도의 요격능력을 보건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타격수단을 확보할 경우에는 유용성이 있으므로 그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1)이건 (4)건 간에 독자적으로는 핵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죠. 

3. 결론

현재로서는 북한의 핵 보유가 사실로 확인되고 미국의 핵우산도 믿을 수 없다면 (1)과 (2) 및 (4)의 병행이 가장 유력합니다. (3)의 경우가 가장 확실하지만 미국이 핵우산을 확실히 걷거나(정말 미국이 직접 한국과 일본을 핵우산에서 뺀다고 공표를 해야 합니다) 먼저 핵공격을 맞은 경우가 아니면 국제적인 제재가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대책이 될 수 없고  (4)의 타격수단 구축을 통하여 북한의 핵시설과 핵미사일을 최대한 줄여놓고, (1)을 통하여 이렇게 남아있는 소수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며, (2)를 통하여 요격이 실패할 경우 국민들의 생존율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또한 전쟁을 결정할 경우 그 방법은 선제타격이 유력합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북한의 핵이 수십 발. 핵을 탑재, 발사할 수 있는 미사일이 수백 발에 달하는 상황이라 우선 타격수단을 강화하고 선제타격을 선택,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최대한 줄여놓을 필요가 있고(수백발에 달하더라도 줄이는 의미는 있습니다), 그 다음 남은 극소수의 핵무기를 남한에 사용하더라도 요격수단을 구축하여 이를 모두 요격하며, 이조차 실패할 경우 방공호를 구축하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병행하여 우리측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가 수량뿐만 아니라 파괴력에서 수십, 수백 킬로톤에 이를 경우에 대비하여 그전에 미리 (1)과 (2)와 (4)의 대책을 완성한 뒤 선제타격을 강행하여 북한 핵무기 개발의 싹을 자르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국방비를 적정 수준으로 확보하며 이를 재래식 군사력의 구축과 함께 핵무기 요격에도 대거 투입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정책 역시 변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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